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숭아 학당 (문단 편집) == [[맹구]]가 주인공인 극장판 영화 == 1992년에는 비디오 영화 <이맹구의 봉숭아학당> 및 <이맹구의 천방지축학당>, <맹구도사와 봉숭아학당> 등지 3편이 만들어졌으며, 전자의 2편은 명보시네마,[* '[[대영팬더]]' 레이블 보유.] 나머지 1편은 대성프로덕션[* '보물섬 홈비디오' 레이블 보유. 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비디오테이프로 수입해서 낸 곳이다.]이 각각 제작했으며 감독은 강용규[* 1958년 8월 17일(음력) 출생. 1977년 무술영화 단역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1982년 <소림사 물장수(감독 임원식)>를 시초로 무술감독을 맡기 시작했고, 1983년부터 MBC <3840 유격대>, <조선왕조 오백년>, <두 형사>, <사랑과 야망> 등지에서 연출부 내지 무술감독을 맡아 감독의 꿈을 키우며 영화 <팔도쌍나팔(1987)>, <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(1987)> 등지에서도 무술감독 내지 조연 등을 맡으며 제작에 관여한 바 있다. 1989년 16mm 영화 <꼬마 대부>를 시초로 어린이 영화 감독을 주로 맡다가 1996년 <언더그라운드>를 시초로 영화감독으로 본격 데뷔해 <킬링게임(1996)>, <턴잇업(2001)> 등과 같이 자신만의 특기를 살린 작품들을 연출했지만 주목을 많이 못 받았다. 봉만대 감독의 스승이기도 하며 2013년 및 2015년에 제자가 연출한 <아티스트 봉만대> 및 <덫: 치명적인 유혹>을 통해 오랜만에 배우로서 깜짝 출연을 했다.([[https://www.kmdb.or.kr/db/per/00001239|참고 자료]])]가 전부 맡았다. 특히 <이맹구의 봉숭아학당>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밤무대 연예인으로 생활하던 맹구가 우연히 일제강점기로 타임리프하여, 평소에는 봉숭아 학당에서 적당히 친구들을 웃기면서 지내다가 배트맨으로 분장하여 순사들을 물리친다는 '''히어로물'''. 영화 중반부 해변에서 벌어지는 '''[[배트맨|베트맨]]'''과 '''[[미야모토 무사시|야마모토 무사시]]'''의 결투가 여러의미에서 압권을 이룬다. 마지막에는 해방과 함께 맹구도 현재로 돌아온다. 일제 치하를 다루어서인지 의외로 꽤 진지하다. 엔딩이 꽤나 황당하면서도 씁쓸한데 모든 일이 끝나고 맹구가 히로인과 결혼해 신혼여행을 걸어서 가다가 길 한복판에 대충 만든 O가 적힌 문과 X가 적힌 문 앞에 있는 저승사자 분장을 한 괴인과 마주하는데, 그는 강제로 맹구 부부를 붙잡아놓고 자기가 내는 문제를 맞추면 O, 틀리면 X가 적힌 문으로 가라고 답정너를 해버린 후 어느 으스스한 밤에 국수가게 주인이 소복차림을 한 여자가 와서 국수를 달라고 했는데, 그녀에게 겁에 질려 달아났는데 어느 틈에 여자가 쫓아와서 한 말이 뭐냐고 묻자 맹구는 '우동값 받으세요.'라고 대답하지만 괴인은 '젓가락을 주셔야죠.'가 정답이라고 하고 강제로 맹구 부부를 X문으로 보내는데, X문을 통과하니 현대로 돌아왔다. 그런데 같이 온 히로인은 수십 년이 지난 뒤라서 할머니가 됐으며, 깜짝놀란 맹구가 그녀를 버리고 달아났다가 자기가 출연하는 밤무대 업소까지 왔다. 맹구를 본 사장은 구박하며 얼른 무대 준비를 하라고 하며, 맹구는 어딘가 씁쓸해하는 모습으로 영화가 끝난다. 여담으로 당시 이창훈은 이 비디오가 출시될 즈음 서울 청담동에 무허가 술집 '뿌르보'를 차리고 접대부 10여명을 데리고 불법 심야 영업을 한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었던 시기였다. 이 사건으로 인해 자숙 기간동안 연극계 복귀까지 고려하던 중 때마침 구속되기 전 계약된 영화를 촬영했었으며 그 결과로 어린이 팬들의 복귀 요청이 엄청났을 정도로 최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주변의 만류 덕분에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맹구 역할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영화 출연으로 이미지를 회복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